복음으로 듣는 교회사(26)

「세속 권력에 포로된 교회 권력」

작성일 : 19.09.09 15:35 | 조회 : 2,184
  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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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 권력에 포로된 교회 권력

     

    세속 권력을 잡고 있는 왕과 교회 권력으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의해 움직이려는 교황과의 권력 싸움은 중세교회를 더욱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였다. 특히 프랑스 왕 필립 4세의 선제공격으로 포로가 된 교황 보니페이스 8세는 그 지방 귀족들의 도움으로 곧 석방되기는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된다. 이때가 1303년이었고, 이 사건이 교황권이 무너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교회 권력의 중심에 선 교황권은 유럽과 전 로마지역의 중심세력이 아니었다. 보니페이스 8세의 뒤를 이은 베네딕트 11(1303-04)도 곧 사망하게 되어, 프랑스 왕의 주도로 새로운 교황 클레멘트 5(Clement , 1305-14)가 선출되었다. 그는 성격이 유약하였고, 교황권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필립 4세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24명의 추기경을 지명하였는데, 23명이 프랑스 사람이었고, 이러한 배경은 왕의 세력에 의한 것이었으며, 클레멘트 교황 재위 기간은 세속 권력 앞에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니페이스 8세가 필립 4세에게 내린 책벌인 수찬 정지와 왕의 파문을 취소하고 필립 4세의 무죄를 선언하였으며, 교황청을 프랑스 근교에 있는 아비뇽(Avignon)으로 옮기게 된다. 1305년부터 약 70년 동안 프랑스 왕의 세력에 예속되어 7명의 교황들이 세워졌지만, 모두가 프랑스 왕에 의해 세워진 자들이었다. 이 기간을 교회의 아비뇽 포로시대또는 구약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빗대어 교회의 바벨론 포로시대라고 할 만큼 교황청과 교회는 프랑스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놓쳐버린 결과, 노예, 포로, 속국이 된 것처럼, 중세교회도 전혀 다를 바 없는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는 동안 교황청을 더욱 확장시키고 웅장하게 건물들을 세우면서 종교세가 많아지고, 성직매매, 족벌주의와 사치 등 향락으로 타락의 길을 가게 된다.

    이때 로마로 교황청이 옮겨질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유럽에 창궐한 흑사병이다. 3년 만에 전 유럽을 휩쓸었고, 이 모든 저주가 교황이 로마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하나는 신비주의자 캐더린의 환상 중에 교황청을 로마로 옮겨야 될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며 전 지역을 순례하면서 교황청을 로마로 귀환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였고, 수많은 군중들의 호응을 받게 된다. 그녀는 도미니크 수녀회 회원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 11(Gregory , 1370-78)에게 로마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것들의 분위기 속에 13771월 로마의 대환영을 받으며 로마로 돌아오게 된다. 드디어 아비뇽 포로 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이때부터 새로운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그레고리 11세가 1년 후 죽게 되자,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모인 추기경들은 대부분 프랑스 출신이었고, 이들은 프랑스가 원하는 교황을 선출하여 다시 아비뇽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로마 시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일으켜 이태리인으로 교황을 선출하도록 강요하였다. 결국, 이태리인 중 우르반 6(Urban )가 교황이 된다. 우르반 6세는 개혁 정신을 가지고 사치와 향락으로 물든 추기경 등 성직자들을 비판하였다. 추기경들은 교황의 과격한 개혁에 반발하여, 교황선거는 강압에 의한 선출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하고 교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아비뇽에 다시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게 된다. 그가 클레멘트 7(Clement , 1378-94)이다. 이제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교황이 세워져 2명의 교황 시대가 시작된다. 이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파문하며 갈등을 가져왔으며, 각 나라 왕들도 두 교황 중심으로 나뉘게 된다. 독일, 영국, 동유럽 중심은 로마 교황을, 프랑스, 스페인 등은 아비뇽 교황을 지지했다. 교황의 권위는 정치적 이권에 맞물려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세속화되고 말았다. 이러한 교회 분열은 4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서로를 비난하며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교황을 선출하였다. 교황청이 양분화 되어 사회적으로 교회적으로 분열되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일부 뜻 있는 지도자들은 더 이상 분열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였다. 두 교황을 사퇴시키고 새로운 하나의 교황을 뽑으려고 시도했지만, 두 교황 모두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서로 양보하라고 주장하였고, 교황들은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종교회의를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양쪽의 추기경들을 중심으로 1409년 피사(Pisa)에 모이게 된다. 유럽 전체의 교회들은 환영하며 지지하고 기대하였다. 두 교황을 폐위시키고, 새 교황을 선출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더 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하였으나, 두 교황은 그 회의를 인정하지 않게 되어 교황은 결국 세 사람이 되고 만다. 새로 선출된 알렉산더 5세는 1년도 못 되어 죽고, 요한 23세를 선출하였다.

    더욱 교황의 분열이 커지자 당시 영향력 있는 강력한 독일 황제 지그문트를 중심으로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콘스탄스(Constans, 1414-18)에서 종교회의가 소집되게 된다. 요한 23세는 참석자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여 사임을 요구하자 도주하게 되고 붙잡혀 강제로 폐위를 당한다. 그동안 로마 교황이었던 그레고리 12세는 같이 사임한다는 조건으로 사임하게 되고, 아비뇽 교황이었던 베네딕트 13세는 자신은 교황직을 사임할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도주하여 죽게 된다. 그리하여 종교회의는 마틴 5(Martin , 1417-31)를 유일한 통일된 하나의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드디어 하나의 교황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분열로 얼룩진 상처는 교황권의 권위를 점점 쇠퇴시키고 있었다. 무엇을 위한 분열인가? 교황의 존재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 세속 권력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회 권력은 무엇인가? 많은 의문과 함께 중세시대를 이끌고 있는 교회들은 이 속에서 갈등하며 신음하고 있었고, 복음이 사라져 버린 교회 안에 사탄의 세력이 자기의 진을 구축하며 자기들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교회들을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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