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교회 김상민 목사

세계복음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237나라 살릴 교회로 응답

작성일 : 19.07.23 11:48 | 조회 : 329
  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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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약교회 김상민 목사


    지역의 흑암을 꺾으며 복음운동의 기초 속에서 세워진 교회, ‘전도선교에 방향

     

     

    서울 상암동을 지나가는 지하철 역 이름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이다. 대부분의 방송국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월드컵경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쪽은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 이 지역의 또 다른 풍경이다. 이 지역이 예전에 힘들었던 사람들이 모여살던 난지도였다는 사실을, 기억에서조차 지우는 듯하다.

    서울의 상징적인 지역에 자리한 언약교회(김상민 목사50). 이 지역에서 복음운동 하는 교회로 자리매김 한 것 자체가 감사하고, 반갑다.

    언약교회는 91, 상암동 인근 연희동에서 황상배 목사(현 임마누엘서울교회 담임)가 개척했다. 연희동은 서울 토박이들이 주로 밀집해 사는 지역이라, 교회 개척이 쉽지 않은 곳이었지만, 황 목사가 2004년 임마누엘서울교회로 부임해 갈 때까지 현장의 복음운동으로 탄탄히 세워진 교회이다.

    그리고 2005, 김상민 목사가 후임 목회자로 언약교회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언약교회 28년의 역사 속에서, 14년은 황 목사가, 그리고 이후 14년은 김 목사가 세계복음화의 큰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힘이 되었던 신앙, 그리고 다락방전도운동으로 이어지게 한 만남

    김 목사의 어린 시절은 고생스럽고 힘들었다. 지나고 보니, 그 어린 시절을 잘 견딘 것이 대견할 정도이다. “불신자 가정이었지만, 부모님은 참 성실한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몸져 누우셨어요. 지금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으니, 그 때 당시 어머니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셨어요. 그리고 아버님도 사업이 힘들어지시고요. 제가 장남이었는데, 설명하기 힘들 만큼 힘들었던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교회 중직자였던 외삼촌이, 교회로 인도했다. 모친은 병을 낫고자 하는 마음이 큰 채 신앙생활을 했고, 어린 시절 김 목사는 복음은 잘 모르지만 교회에 가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되었던 듯하다. 그러면서도 우리 집은 왜 이럴까하는 마음이 컸다. 고등학교 1학년, 결국 모친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소천했다.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어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영향을 주신 분이 바로 대구 선교교회 김일환 목사님입니다. 제가 섬겼던 교회의 전도사님으로 오셔서, 중고등부와 대학부에서 저를 인도하시고, 영향을 주셨던 것이지요. 김 목사님이 9113, 지금의 대구선교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저도 개척멤버가 된 것입니다.” 김 목사의 말이다.

    당시 대학생으로서, 개척교회에서 김 목사는 제대로 훈련을 받았다. “처음에 김일환 목사님도 교회를 개척하셨으니 전도폭발 등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많이 하셨어요. 그러다가 김 목사님이 목회의 중요한 시간표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을 만나게 되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이 복음운동에 따라붙게 된 것이지요.”

     

    부교역자로서 시간표, 다락방전도운동의 현장, 만남이 너무나 신나고 감사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왜 이렇게 집회를 다니는 것인지,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러나 어느 날, ‘복음이란 단어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가 어린 시절 겪은 우리 집의 문제가,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잘 몰랐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알면서도, 모든 어려움은, 제가 노력해야 풀리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이고, 우리의 신분이 끝났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문제를 끝내셨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요. 그 때부터 제 인생도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목회자가 되기를 결단하고, 96년도에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해서 공부할 즈음, 다락방 이단 운운하는 문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신대원에서 더 이상 공부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고, 휴학계를 내며, 더욱 훈련에 집중하는 시간표속으로 들어갔다.

    교회 사역도 물론이지만 파라에서 마난 귀한 동기들과의 현장 경험은, 마음껏 복음운동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특히 대구에서 또래의 목회자들과의 만남, RTS 1기 졸업생으로 부산의 임마누엘교회 부교역자들과의 학업도 너무나 귀했다. 96년도부터 20038월가지 선교제일교회 부교역자로서의 생활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값지고 값진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2003년 안양세계선교교회 부목사로서 부임지를 옮기며, 안양의 현장을 경험하는 중에, 언약교회 황상배 목사와 만남이 이뤄졌다.

     

    2005년 언약교회 부임, 새로운 시작

    언약교회는 황 목사가 임마누엘서울교회로 부임하고 1년 동안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20051월 첫 주, 김 목사가 언약교회로 부임을 했다. 첫 주 설교는 한 해의 방향을 알리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이었다.

    언약교회는 황 목사님이 현장에서부터 탄탄하게 복음운동을 해왔던, 단단한 교회였어요. 또 목사님을 아쉽지만, 본부의 임마누엘서울교회로 보내드렸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성도들이 130여 명 정도 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성장을 하고 있던 교회였습니다.”

    김 목사는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해왔던 복음운동을 지속하는데 방향을 맞췄다.

    먼저 김 목사가 15년째 지속하고 있는 월요 전도학교는 언약교회 전통이 되었다. 강단과 본부 메시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말씀과 캠프의 방향을 전하면, 30여 명의 사역자들은 자체적으로 다락방과 지교회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0여 명은 오랫동안 훈련을 받으며, 현장에서 말씀운동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사역자들이다. 함께 3주 동안 지역을 순회하고, 집중 캠프 하는 사역을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주일캠프를 하고 있다. 오전 예배와 식사가 마쳐지면, 렘넌트들부터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 주변의 현장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복음을 전한다. 불신자들이 교회까지 연결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의 흑암이 꺾이고, 전 성도들이 복음운동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성전 건축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시간표

    성전 건축에 대한 시간표도 자연스러웠다. 아파트 상가 건물의 3층을 사서 예배를 드리다가, 점점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2층의 상가들까지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자 아파트 주민들이 노골적으로 싫어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상가 편의시설이 없어지자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주차 공간 등등으로 약간의 마찰이 생겨났던 것.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우리 교회를 어떤 목사님이 찾아오셨어요. 상암동이 개발되기 직전부터 난지도 주민들과 목회를 하셨던 분이, 지금 우리 교회 부지를 어렵게 종교부지로 인허 받았으나, 건축할 여력이 안되니 성전 부지와 당시 교회와 맞바꾸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로서는 숨 고르기 하거나 생각할 틈 없이, 곧바로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된 셈입니다.”

    사람의 계획대로라면 큰 문제 없이, 교회가 감당할 만한 시간표였다. 그러나 시공사를 잘못 만나면서, 교회에서 지불한 대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면서, 교회 건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왔다. 교회 건축에 관여한 하청업자들이 유치권 행사를 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면서 입당 예정 날짜가 미뤄지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 이전 교회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주일 예배드릴 곳이 없어, 수색에서 임시로 건물 한 층을 빌리기도 하고, 공사가 덜 끝난 지하에 자리를 펴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또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등등. 여러 난항들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마다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교회 공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201149일 입당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대지 180평에 지하2, 지상6층으로 680평의 성전이 완공된 것이다. 본당, 교육관, 선교관 등이 마련되었다.

    이처럼 교회 성전이 마련되면서, 주변에서 이단 운운하는 공격도 있었지만, 교회는 꾸준히 부흥했다. 렘넌트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500여 명의 성도이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했다.

    교회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이 영적으로 부흥하는데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천안함 사건이 터졌는데, 박병규 목사(2017년 소천)의 외아들 고 박석원 상사가 그 배에 승선했던 것이다. 박 형제는 너무나 신실했던 청년으로, 군대에서도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 사건이 터지면서, 박 목사는 아들이 작정한 건축헌금과 보상금 일부를 교회에 헌금했다. 천안함 박석원 청년이 남긴 유품은 성경과 기도수첩으로, 그의 아름다운 신앙은, 교회 건축으로 한창 어려움을 겪을 때 언약교회 성도들을 영적으로 하나 되게 했다.

    한편 교회는 237나라 살릴 교회로 헌신하는데 방향을 맞추며 선교와 전도운동에 한결같이 방향을 맞추고 있다. 선교 부분에서는 해마다 김 목사와 성도들 30여명이 선교 현장을 위해 단기 선교를 해오며, 필리핀, 대만, 중국 등을 밟았다. 그 결과 필리핀 클락의 신남선, 박현정 선교사를 교회에서 파송하게 되었다. 또한 김 목사는 독일 담당 목사로 임명되어, 올해부터 독일 사역에 집중하도록 기도중이다.

    또한 13개 지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말씀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위드 오케스트라도 지교회로 응답을 받고 있다.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교회 렘넌트, 주변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교사와 아이들이 단순히 달란트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통해 말씀운동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중이다.

    류광수 목사님이 말슴하신대로 외국 뿐만 아니라 한국의, 당장 주변의 교회도 이단에게 팔리고, 교회가 부도가 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복음의 흐름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교회가 되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직 복음 만으로, 교회가 되어지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증거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교회가 되는 것,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부분입니다.” 김 목사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복음운동, 전도운동, 그 흐름 속에서 세워지고, 또 부흥하고 있는 언약교회. 한 시대의 전도운동 하는 교회로, 마음껏 헌신하는 교회의 응답을 기도해본다.

    오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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