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里) 단위의 시골교회에서 일궈낸 기적, 예원RUTC 공동체

예원RUTC교회 박문종 목사(71)의 원로목사 추대, 박상욱 목사의 취임예배

작성일 : 18.06.11 16:08 | 조회 : 738
  1. 글쓴이 : 최고관리자
  2. 청년들이 자라 중직자가 되고, 전도제자의 삶으로 하나 되다

     

    박문종 원로목사

     

    지난 429, 축제와 같은 예배가 드려졌다. 예원RUTC교회 박문종 목사(71)의 원로목사 추대, 박상욱 목사의 취임예배가 전남노회 목회자들, 교회의 성도들이 함께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문종 목사가 교회에 온 해가 88년이니까 올해로 30년이 되는 해이고, 성도들과는 30년 이상 동거동락을 했다. 장로들 가운데 8명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같이 살다시피 했던, 렘넌트들이 중직자가 된 경우이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이 되었던 것 가운데, 이들 장로 8명이 서로 결혼을 해서, 4쌍의 가정을 이뤘다. 자녀가 부모의 칠순 잔치를 해주듯, 이들 중직자들은 박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예배에를 축제처럼 치렀다.

    아직도 설교 할 때면 가장 열정적인 메신저가 되곤 하는 박 목사가, 좀 더 현장에서 함께 있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간절했지만, 서운함 보다는 감사와 축복의 자리로 여긴 이유가 있었다. 10여년 이상 박 목사는 나이 70세만 되면 무조건 은퇴하고 세계 선교 현장을 돌며 사역하고 싶다고 늘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 이면에는 박 목사의 깊은 기도와 배려가 담겨 있다. “제가 목회하면서부터 늘 맘에 담았던 기도가 있었어요.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후임 목회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면 거의 대부분 분란이 일어나요. 후임 목회자와 성도들이 서로 잘 모른 상태에서 시험도 들고, 갈등도 일어나는 모습을 봤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부교역자로 섬기면서 성도들과 함께 하다 보면, 그런 갈등도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했지요. 렘넌트 사역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박상욱 목사를 우리 교회에 초빙할 때에도 저의 이런 마음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옆을 기웃거리지 말고, 현장을 뛰고, 이 교회에 뿌리를 내리라고 했어요. 게다가 박상욱 목사 시간표로 봤을 때에도, 이제 마음껏 목회 현장을 뛰어야 할 때이고요. 그래서 인간적으로야 조금 더 목회 현장에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때 물러나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문종 목사의 말이다.

     

     

     

     

    조금의 불신앙도 없이 전 성도가 복음운동에 하나 돼

    유교 집안에 외가의 영향으로 8살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좋았고, 교회가 좋았던 시골 청년은, 사업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때늦은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이 마흔에 목회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을 했다. 물론 송헌숙 사모의 반대가 심했다. “교회에서 만나 가정을 이뤘지만 제 계획 속에 목사, 사모의 삶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섬기던 교회의 장로 투표에서 떨어져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다고 해요. 그리고 얼마 후 교통사고가 크게 나고, 제 마음 속에 자연스레 순종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도사 시절 부임한 첫 목회자가 바로 담양 고정교회였다. 지금의 담양 예원RUTC교회의 전신이다. 담양군의 무정면 고정리에 있는 시골교회였다. () 단위의 시골교회였으니,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는지, 당시에는 교회 건물과 몇몇 성도들만 있었을 뿐 목회자도 오랫동안 비어있는 곳이었다.

    광주에서 버스를 5번 갈아타야 가는 곳이었고, 목회하기 전 박 목사의 한 달 수입과 교회의 일 년 결산이 비슷할 정도로 열악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박 목사 부부에게 처음부터 은혜와 교회와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 당장 다음 날 먹을 쌀이 떨어져도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없고,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신 나고 힘이 났다. 목회가 풍성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불편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박 목사를 처음 만나, 지금은 교회의 중직자가 된 이창신 장로(44)는 그 때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지금이야 광주와 담양이 가까운 거리이지만, 30년 전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어요. 목사님과 사모님이 그런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깨끗한 옷을 입고 전도하러 다니시는데, 그 모습이 그토록 행복해 보였어요.”

    92년도 즈음에 사모가 먼저 다락방전도운동을 접하게 됐다. 대구에서 열리고 있던 사모 영신회에 참석하며 복음편지 한 장의 메시지를 접하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복음중심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사모는 박 목사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은혜 받은 말씀을 전했다. 이후 정확한 시간표가 주어졌다. 얼마 후 류광수 목사가 광주 헬몬산 기도원에서 집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목사에게도 복음은 통했다. “너무나 좋은 복음을 듣고, 그 내용을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함께 복음을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든 집회를 함께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은혜를 받은 셈이지요.”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은혜를 받으면서,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교단들의 이단 문제가 불거졌을 때 예원RUTC교회 성도들은 더 하나가 됐다. 성도들이 모여 자진 탈퇴를 하고, 교단에서 나왔다. 그러니 박 목사가 교단에서 제명당할 일도 없었다. 조금의 불신앙이나 잡음 없이 성도들이 하나 되어 이 복음운동에 올인 할 수 있었다.

     

    교회 건축과 청년들이 중직자로 되기까지

    다락방전도운동을 하면서 박 목사와 성도들에게 한 가지 기도제목이 생겼다. 전국의 각 교회에서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담양에도 집회가 열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당시 성도들이 15명 정도 되었는데, 류광수 목사님의 집회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주변의 논들을 조금씩 사서 1천 평 정도 되어 대지 변경을 하고, 건축을 시작했어요. 돈은 정말 한 푼도 없었어요. 저와 청년들이 용접도 하고, 건축 일을 배워가면서 교회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런 중에 IMF 위기가 닥쳐 우리 교회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때 본부에서 도움을 주셔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담양의 예원RUTC 교회가 지어졌다. 밑바닥부터 지붕까지 모두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땀이 배여 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또 한 가지 이 교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청년들이 다락방전도운동이 복음운동 가운데 잘 성장하여 서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뤘다. 이 가운데 두 가정은 부여 새생명교회, 목포 하나교회 목회자로, 네 가정은 교회의 중직자가 되어 있다.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이들 제자들이, 자녀가 부모를 섬기듯, 모든 행사를 주관하며 주변 목회자들을 섬겼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 청년들이 교회 건축을 하면서, 어느새 돌아보니 모두 건축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인테리아, 시공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각각 건축회사를 설립하고, 산업 현장에서 서로 윈윈하는 산업현장에서도 동역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복음, 교회, 가정, 산업이 하나 되어 공동체를 이룬 셈이다.

     

    담양과 광주에서 각각 복음운동, 렘넌트 키우는 교회로

    한편 교회 제자들이 세워지면서 10년 전, 광주에 지교회가 세워졌다. 제자들이 가정을 이루고 렘넌트들이 생겨나면서, 광주에서 담양까지 오고가는 것이 쉽지 않은 터에 기도 중에 지교회당을 마련하고 3년 동안 전도캠프를 했다. 담양에는 기도부대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1,2부 예배가 나뉘어 담양과 광주에서 각각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매달 한 번씩 담양에서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린다.

    현재 120여명의 성도들 중에, 렘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기도스쿨과 멘토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복음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복음 때문에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입니다. 복음이라면 모든 중직자와 성도들이 가정 경제 보다는 교회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지금까지 노(NO)가 없었으니까요. 특히 어렸을 때 만나 30대에 중직자로 세워진 제자들을 보면 너무나 감사합니다. 복음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면서 은혜 받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박 목사의 이 말에 중직자들은, “이 복음 안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응답이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30여년의 응답들을 작은 지면에 풀어놓는 것이 역부족일 만큼, 복음운동의 공동체로 우뚝 선 예원RUTC 교회와 박문종 원로목사, 박상욱 목사, 그리고 중직자와 성도들, 렘넌트들. 이들의 축복은 누구에게나 부러움으로 전해질 것이다.

    오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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